[시앙스 앙퓌즈] - 세상의 모든 리뷰 :: 삼위일체 교리 발전사(2) 스탠포드 철학 백과

posted by 사용자 자유로운 목사 2016. 9. 6. 13:52



본 포스팅은 스탠포드 철학백과의 “History of Trinitarian Doctrines”의 번역이다. 항목의 원저자는 뉴욕주립대(프레도니아) 철학교수인 Dale Tugg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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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기독교 성경


2.1. 구약

2.2. 신약


3. 신경들의 발전


3.1. 325년까지

3.1.1 삼위일체와 유일신(The One God in the Trinity)

3.1.2. 테르툴리아누스


3.2. 325-381: 아리우스 논쟁


3.3. 니케아 합의 이전

3.3.1.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3.3.2. 아우구스티누스

3.3.3. 아타나시우스 신경


4. 중세의 삼위일체 이론들


4.1. 토마스 아퀴나스

4.2. 요한 둔스 스코투스


5. 중세 이후



2. 기독교 성경


2.1 구약


삼위일체 교리는 구약에서 명시적으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다. 지성있는 삼위일체론자들은 이것을 인정하고, 그 교리는 하나님에 의해 후대에, 즉 신약 시대(c.50-c.100)와/혹은 교부시대(c.100-800)에 계시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적으로 다 알게된 뒤에는 구약의 상당한 본문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협력에 대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덧붙인다.


(Lucas van Leyden 1494 – 1533 "Abraham and the Three Angels" copper-plate — 1513)


예를 들면, 창세기 18장에서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세 사람’으로 나타나지만 자주 ‘한 사람’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읽혀진다. 그들이 말하는대로 이것이 하나님 본성 내의 세 위격의 현현이나 임시적인 삼중의 성육신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어떤 해석자들은 여호와를 그 사람들 중 다른 이들이 창세기 19장에서 소돔으로 떠날때 남아 있던 한 사람과 동일시한다.


다른 구약 구절들에서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성육신이전의 성자가 언급되거나 아버지의 명령을 행하기 위해 심지어 육체를 입고 나타난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들은 때때로 그가 ‘여호와의 사자’로 언급된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성육신이전의 그리스도를, 다니엘, 유다서, 요한계시록 등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천사 미가엘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또한 여러 구약 구절에서 여호와는 스스로를(혹은 3인칭으로) 복수형태로 언급하기도 한다. 비삼위일체론자들은 이것을 ‘장엄복수’(plural of majesty)로 읽는데, 이는 많은 언어에서 발생하는 화법이기도 하고, 또라는 하나님과 천사들간의 대화로 보기도 하는 반면에, 삼위일체론자들은 이것을 삼위일체의 위격들간의 대화로 읽는다.


요약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을 신약의 ‘렌즈’로 읽는다. 예를 들면, 구약은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 지혜, 영으로 일한다고 말한다. 신약의 일부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로 말하며, 요한복음 같은 경우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낼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어떤 그리스도인은, ‘성부’에 더하여 두 신적 존재를 덧붙일 문이 열려있다고 주장하며, 그들 중 인간 예수에 성육신한 존재 안에서/통하여/의하여 활동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또 다른 그리스도인은, 헬라인들이 앞서 언급한 휘포스타시스화(인격화 내지는 실체화)를 고무시킨다는 점을 주장하며, 신적 속성들의 신인동형론적인 것으로 읽는다.


2.2 신약


신약은 삼위일체 교리를 명시적으로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 신학자, 변증가, 철학자들은, 이 교리가 신약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으로부터 추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추론될 수 있을까?그 추론은 연역적인가? 그 추론이 최선의 설명인가? 신약에서 명시적으로 가르쳐지는 것에 기초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추측해보는 것인가?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과 변증가들은 연역적인 추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삼위일체에 대한 선호는 (1) 성경 하나 만으로는 추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2) 성경의 증거는 불충분 혹은 증거가 없으며, 심지어 (3)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은 삼위일체 교리와 양립할수도 없는 것임을 인정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교리가 후대의 참된 기독교 교회(전형적으로 가톨릭 교회, 동방정교회, 혹은 기독교 전통의 주류들)의 교리적 선언의 권위에만 의거하여 믿는다. 일부 가톨릭 변증가들은, 이 교리는 교회의 가르치는 권위의 필연성을 보여주며, 또한 이 교리는 기독교의 구성요소이지만, 성경을 해석하는 교회의 인도를 배제한채, 성경만으로는 이끌어 올 수 없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가톨릭이나 동방정교회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대중적인 것은 아니다. (2)번 같은 경우는 주요한 쟁점이 될지라도, 어떤 집단은 위의 (1), (2), (3) 전부 부정한다.


많은 그리스도인 변증가들은, 삼위일체 교리가 ‘성경적’(명시적으로 성경이 가르친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에 대한 최고의 설명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이라고 주장하며 세 종류의 논증을 펼친다. 변증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참되신 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구약이 가르친다고 주장함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그리고 나서, 성경은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해서 가르치고, 그리스도와 성령도 반드시 ‘온전한 신적인 존재’(fully divine)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말하자면, 한 하나님의 본성 ‘내에서 그들을 다루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 안에’(in God) 세 완전한 신적 위격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인류에게 계시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논증들은, 아래와 같이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의 ‘온전한 신성’(full divinity)을 보여주려고 한다.


1. 성자는 A를 행했다.

2. 어떤 x가 있다고 할 때, 만약, x가 A를 행한다면, x는 온전한 신적 존재이다.

3. 따라서 성자는 온전한 신적 존재이다.


*예를 들어, A는 죄의 용서를 선언할 수 있고, 예배를 받을 수 있고,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고,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라고 진실되게 말할 수 있고, 우주를 창조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1. 성경은 성부를 성자의 이름을 주거나 혹은 성자로 묘사한다.

2. 어떤 x가 있다고 할 때, 만약 성경이 성부를 x에게 적용한다면, x는 온전한 신적 존재이다.

3. 따라서 성자는 온전한 신적 존재이다.


*예를 들어 성부는 처음과 나중이요, 신적 존재이자 하나님이요, 우리의 구원자라고 말한다.


1. 성자는 Q라는 자질을 갖고 있다.

2. 어떤 x가 있다고 할 때,  만약 x가 Q라는 자질을 갖고 있다면, x는 온전한 신적 존재이다.

3. 성자는 온전한 신적 존재이다.


*예를 들어, Q는 무흠, 전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하는 자질을 가리킨다.


이러한 논증들이 연역적으로 타당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심각한 모호성으로 괴로워한다. ‘온전한 신적 존재’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명확하게 되기 전까지, 논증되고 있는 어떤 삼위일체 이론들이라도 명백하게 되지 못한다. 다양한 이론가들에 따르면, 어느 한 ‘온전한 신적 존재’는 신적 본성을 지녀야 하고, 신과 동일시 되어야 하고, 신의 정신이어야 하며, 신 스스로 및 세상 등과 관계맺는 방식에 이르러야만 한다. 게다가 긱 논증의 두 번째 전제의 인식론적인 차원은 ‘신성’(divine)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논증들의 반대자들은 두 번째 전제에 대한 성경의 반박 사례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신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에 타당한 신적인 존재가 아니며, 하나님에 의해 권위를 부여받은 인간들은 죄를 용서할 수도 있지만, 역시나 이에 타당한 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또 다른 경우, 그들은 첫 번째 전제도 도전한다. 예를 들어 예수 스스로는 자신이 전지한 존재임을 부정했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말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


또다른 형태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1. 본문 E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A를 행할 것이라고 예측한 진실된 예언이다.

2. 본문 F는 본문 E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성취되었음을 온전하게 보여준다.

3.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인 것은 정당하다. 


반대자들은 이러한 논증이 부당하다고 응수한다. 그 전제들은 결론이 거짓이라도 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만약 조지 부시가 이라크를 정복할 것이라는 예측이 스미스 장군의 행위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할지라도 스미스와 부시가 하나이고 동일인이라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스미스는 부시의 행위자로 활동했다. 그와 유사하게 여호와는 자신의 종 예수를 통해서 활동한다. 이 논증의 또다른 약점은, 만약 그것이 괜찮을지라도 결론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와 하나님이 ‘숫자적으로’ 동일시 되어야 하고, 거기에 덧붙여 성부는 ‘숫적으로’ 하나님과 동일시 된다는 의미에서 ‘온전한 신적 존재’라고 한다면, 논리적으로, 예수는 성부이다(혹은 숫자적으로 성부와 동일시된다)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럼에도 모든 삼위일체론자들에 의하면, 다른 것에는 참이 아닌 하나에만 참인 어떤 것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거의 모든 삼위일체론자들이 세 위격들 중 하나 그 이상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려는 이유이다. 한편으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참이지만 역설적으로 나타나는 신비(mystery)로 취급한다.


이러한 예수와 성령의 신성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연역적인 논증들의 최선의 모음으로 구성되었다기 보다는 성경에서 고려되는 모든 구절들을 가장 잘 설명하기 위한 시도, 즉 최고의 설명을 추론해내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을 따지자면, 결코 더 못하지 않은 대안적인 설명들이 세부적인 부분에서 간혹 탐구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유형의 많은 논증은 고대로 거슬로 올라가며, 유사한 유형은 반복되었고, 또한 언제나 주류 삼위일체로는 공격을 받았다(Beckwith 2007; Bowman 2007; Bowman and Komoszewski 2007; George 2006; Stuart 1834; Waterland 1856a-e). 17세기-19세기의 기간 중 이러한 삼위일체 논증에 대한 보다 발달된 훌륭한 수많은 반박이 있지만, 오늘날의 신학자들, 철학자들, 변증가들 대다수가 그것들을 망각하고 있다.(Burnap 1845; Clarke 1978; Crellius Racovian; Crellius 1691; Emlyn 1746; Haynes 1797; Lardner 1793; Lindsey 1776, 1818; Norton 1859; Nye 1691b; Priestley 1791a-c; Wilson 1846).



출처: http://plato.stanford.edu/entries/trinity/trinity-history.html#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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