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앙스 앙퓌즈] - 세상의 모든 리뷰 :: 삼위일체 교리 발전사 (3-2) 스탠포드 철학 백과

posted by 사용자 자유로운 목사 2016. 9. 9. 19:48



본 포스팅은 스탠포드 철학백과의 "History of Trinitarian Doctrines"의 번역이다. 항목의 원저자는 뉴욕주립대(프레도니아) 철학 교수인 Dale Tugg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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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기독교 성경


2.1. 구약

2.2. 신약


3. 신경들의 발전


3.1. 325년까지

3.1.1 삼위일체와 유일신(The One God in the Trinity)

3.1.2. 테르툴리아누스


3.2. 325-381: 아리우스 논쟁


3.3. 니케아 합의 이전

3.3.1.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3.3.2. 아우구스티누스

3.3.3. 아타나시우스 신경


4. 중세의 삼위일체 이론들


4.1. 토마스 아퀴나스

4.2. 요한 둔스 스코투스


5. 중세 이후



3.2 325–381: 아리우스 논쟁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ca. 256-336)에 의해 촉발된 논쟁은, 비판적인 주교 집단들이, 삼위일체에 대한 표준적인 표현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도록 모이게 만들었다. 이 논쟁은 매우 복잡하고, 최근의 역사가들을(Ayres 2004; Freeman 2008; Hanson 1988; Pelikan 1971; Rubenstein 1999; Williams 2001) 통해서 많은 것이 밝혀졌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리우스는, 이전의 종속론자들의 신학적 전통에 맞추어, 하나님의 아들은 피조물이며, 유한한 때 언젠가 무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가르쳤다. 약 318-21년 사이, 아리우스의 가르침에 처음부터 반대한 아리우스의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주교(d. 326)간 논쟁이 발생했다. 알렉산더는 아리우스를 심리하고선 출교했다. 교회의 수많은 지도자들 및 신자들은 성자에 대한 종속론적 전통을 고수하며 아리우스 편으로 모였고, 또 다른 이들은 성자의 영원한 존재와 (다양한 의미에서) 성부와의 존재론적 동등성을 주장하는 신학에 흥미를 느끼며 아리우스의 반대편에 가입했다. 그 논쟁은 교회를 분열시킬 정도로 위협적이었고, 수많은 공의회를 열게 했으며, 아리우스와 그의 수호자들, 혹은 그의 반대자들의 출교와 해명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양 측은 반대자들을 황제의 권력으로 처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당대의 황제의 호의를 사려고 노력했다.

(아리우스의 서적을 불태우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북이탈리아 교회법에 있는 그림, ca. 825.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irst_Council_of_Nicaea#/media/File:Constantine_burning_Arian_books.jpg)


후대의 가톨릭의 표준점으로 볼 때, 이러한 일련의 일들의 핵심적인 사건이 325년에 발생했다. 325년, 하나의 주교 회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ca. 280-337)에 의해 개최되었고, 그 회의는 성부와 성자를 ‘호모우시오스’(동일 실체 혹은 동일 본질)로 선포했다. 아리우스와 그의 편은 출교당했다. ‘우시아’의 본래 의미가 여기서는 별로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그 용어는 복잡한 역사적 상황과 사용을 지니는 데다가, 그 회의는 어구의 모호성을 없애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Stead 1994, 160–72). 그들이 그 용어를 택한 이유는 아마도 아리우스 측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그러나 모호한 정식(formula)은 논쟁에 부채질을 했다. 종속론자들과 반종속론자들은, 그 문구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사용하였고, 후대에 가서는 그 해석을 두고 싸우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 이르러,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d. 373)라는 한 사람의 반 종속론자의 독법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호모우시오스’는 성부와 성자는 단순히 유사한 존재하가 아니라 여러 의미에서 ‘한 존재’(one being)이라는 주장으로 이해되었다. 그 공의회는 성령이 성부 및 성자와 ‘호모우시오스’라고 말하는 것은 꺼리긴 했지만, 성령은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하며, 그 신경을 수반하는 한 편지에는 ‘셋은 하나의 신성과 권능과 실체’를 공유한다라고 덧붙여져있다.(Leith 1982, 33; Tanner 1990, 24, 28). 성자의 신성을 촉직시키기 위해 동일한 종류의 논증들의 시대에 뒤이어, 그러한 것은 성령에게도 반복되었고, 결국 마침내 성령에게 호모우시오스를 적용시키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


아타나시우스를 비롯한 지배적인 측에 있는 자들은, 인간의 구원이 ‘성자’ 및 ‘성령’이 아버지와 동등한 신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고 논증했다. 이러한 종류의 논증은, 구원은 인간의 신성화(deification, 神聖化) 내지는 신적화(divinization, 神的化)를 포함하며, 그러한 인간의 변화는 그 스스로 신인 존재에 의해서만 성취된다는 논쟁적인 구원론 모델들에 의존한다(Rusch 1980, 22–23).


구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이 구원을 성취하는지에 대한 신념들이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러한 종류의 논증은 대중적이다. 만약 그리스도 혹은/그리고 성령이 또 다른 의미로 ‘온전한 신적 존재’가 아니라면, 인류는 그들(성자와 성령)의 행위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이러한 논증의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중세 시대 안셀무스의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 이러한 논증의 대중적인 것이 하나님, 즉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에 의한 우리의 용서가 무한한 가치의 희생제사를 요구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즉, 온전한 신적 존재가 무한한 가치를 지녀야 하기에, 그리스도는 온전한 신적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출처: http://plato.stanford.edu/entries/trinity/trinity-history.html#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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