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앙스 앙퓌즈] - 세상의 모든 리뷰 :: 삼위일체 교리 발전사 (4) 스탠포드 철학 백과

posted by 사용자 자유로운 목사 2016. 9. 15. 14:45



본 포스팅은 스탠포드 철학백과의 "History of Trinitarian Doctrines"의 번역이다. 항목의 원저자는 뉴욕주립대(프레도니아) 철학 교수인 Dale Tugg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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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기독교 성경


2.1. 구약

2.2. 신약


3. 신경들의 발전


3.1. 325년까지

3.1.1 삼위일체와 유일신(The One God in the Trinity)

3.1.2. 테르툴리아누스


3.2. 325-381: 아리우스 논쟁


3.3. 니케아 합의 이전

3.3.1.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3.3.2. 아우구스티누스

3.3.3. 아타나시우스 신경


4. 중세의 삼위일체 이론들


4.1. 토마스 아퀴나스

4.2. 요한 둔스 스코투스


5. 중세 이후



4. 중세의 삼위일체 이론들


교회 공의회 결정들은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 다수에 의해서, 마치 대법원 판결처럼 여겨진다. 초기의 결정들이 새로운 필요를 만나 구부러지고 꼬일지라도, 그것들은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침범할 수 없는 선례들이다. 그러므로, 교회 조직은 이러한 경계들이 침범되지 않도록 했고, 또한 400년경부터 종교개혁(ca. 1517)에 이르기까지 삼위일체론의 구체화는 신앙고백적 전통의 경계 내에서 강력하게 보호되었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중세 삼위일체론들은 본질적으로 니케아 이전 합의 토대 위에서 보다 더 확고하면서도 형이상학적인 형태의 작품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들은 엄격하게 신조의 진술들 및 권위있는 교부들의 작품들을 고수한다. 그러나 위격들이 무엇인지, 각 위격들이 서로, 하나님 혹은 신적 본질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 더 풍성한 진술을 제공하진 않는다.


이러한 순응에 저항했던 예외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삼신론적 삼위일체 신학들이 제시되고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Erismann 2008; Pelikan 1978, 264–7; Pohle 1919, 255–63; Tavard 1997).


4.1.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 출처: 위키피디아)


토마스 아퀴나스는 매우 발전되고 난해한 삼위일체 이론을 전개한다.(Summa Contra Gentiles 4.1–26, Summa Theologiae I.27–43). 하나님은 “순수 현실태”(pure act)이다. 즉, 하나님은 어떤 종류의 가능태를 갖고 있지 않다. 또한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단순한 존재로, 그분에게는 나뉘어진 부분들, 속성들, 혹은 행위들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은 ‘이해하고’ ‘의지한다’고 말해야만 한다. 이러한 신적 작용들은 반성관계, 즉 삼위일체의 위격들이다. 하나님에 의해 영원히 출생한 ‘말씀’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일 실체(first substance)라 부른 한 위격(휘포스타시스)으로, 하나님의 본질을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관계적으로 구별된’ 존재이다.


그 신적 본질을 공유하는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어떤 단순한 동류(예를 들면 한 쌍의 날개)보다 더 가까운 관계이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는, 서로가 완전히 같은 존재(identical)라고 보지는 않은 듯하다.(즉 그들은 사실상 셋이다). 아퀴나스는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그들의 관계로 인해 개별화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개념을 발전시킨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아버지됨, 아들됨, 성령됨이라는 각각의 관계들은 하나님 ‘안’에서 실제이고 구별된 존재이며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세 위격을 ‘구성하고 구별한다.’ (Hughes 1989, 197). 각 위격들은 관계라는 측면에서는 구별되나 본질 혹은 존재라는 측면에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한 주석가의 말을 빌리자면,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두 관계 모두 신적 위격들을 구성하고 구별한다. 관계들이 신적 본질이라면, 그 관계는 각 위격들을 구성하며, 역으로 위격들이 관계라면, 그 관계가 위격들을 구별한다.”(Hughes 1989, 217)


그러나 어떻게 이러한 관계들이 이루어지고 구성되는가, 혹은 각 위격들이 신적 본질이라면 무엇이 세 신적 휘포스타시스들을 발생시키는가? 만약 각각이 신적 본질이라면, 각 위격은 다른 나머지 위격과 같은 것은 아닌가? 아퀴나스는, 자신의 주장이 비정통 삼위일체론인 양태론(modalism)에 이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왜 양태론이 되지 않는지 보여주기 위해, 그는 존재 및 개념의 동일성(identitas secundum rem et rationem)과 단순한 존재의 동일성(identitas secundum rem) 사이를 구별한다. 그리고 나서 예측되는 반대에 대응하여, 아퀴나스는 위격들이 존재와 개념의 동일성일 때만 그러한 결과(양태론)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각 위격들은 그렇지 않다. 위격들은 단순한 존재의 동일성만 지닌다. 


이것은 난해하다. 아퀴나스는, 셋은 단순히 유사하거나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보다 더 강력한 의미로 동등하지만(the same), 아퀴나스가 이해하는 존재와 개념의 동일성처럼 (숫적으로) 같은 것은(not identical)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놀랍다. 혹자는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존재의 동일성’이 그저 ‘같은 것’(identity)이며, ‘개념의 동일성’은  우리가 어떤 사물에 부여할 수 있는 동등함의 개념(하나일수도 있고 여럿일수도 있는)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크리스토퍼 휴스(Christopher Hughes)는, 아퀴나스는 단순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며, 정통 신앙이 그를 이 문제(및 기타 다른 문제)로 이끌었고, 필연적으로 실패한 것뿐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휴스의 독법에 의하면, 아퀴나스는 ‘같음’(identity)을 ‘존재의 동일성’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일관성 없이, 그것이 이행불가능한 것이라 주장한다(즉, 만약 A와 B가 같으며[identical], B와 C도 같으나[identical], A와 C는 같지 않다는 격이다). 물론 어떤 배경에서는 그것이 또 이행가능하다고 한다.(Hughes 1989, 217–40).


이러한 지점에 대한 아퀴나스의 해석은 난해하다. 최근의 어떤 철학자들, 그러니까 아퀴나스의 삼위일체론에 공감하는 이들은, 그의 이론 전체를 구하려고 하지 않으며, 아퀴나스에 의해 다소 불투명하게 이루어진 다양한 구분들의 도움을 통해서, 그의 접근방식을 다시금 끄집어내려고 한다. 이것은, 아퀴나스의 위격들에 대하여 양태에 기초한 접근 방식(즉, 하나님 자기 자신에 대한 세 가지 방식의 관계)을 발전시키고 입증하는 일을 포함하며, 이러한 관계들이 실제로는 실체를 지닌 위격들임을(substantial persons)을 보여주며, 각 위격들이 숫적으로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신적 본질을 공유하는 관계를 구체화시킨다.


4.2. 요한 둔스 스코투스

(요한 둔스 스코투스, 출처: 위키피디아)


리차드 크로스(Richard Cross)는 요한 둔스 스코투스(1265/6–1308)를 가리켜 “이전에 구성된 그 어떤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보다도 강하게 일관성을 지닌 주장을 한 자”라고 말한다.(Cross 2005, 159).


실재론자들은 보편과 관련하여서, 개별 인간에 한하여, 보편 혹은 공통 본성, 즉 소위 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예를 들어 개별 인간인 베드로는 공통본성, 즉 인성의 한 실례이다. 그와 유사하게 성부, 성자, 성령은 소위 신성이라 불리는 보편의 세 실례들이다.) 그러나 인성과 달리 신성은 그 실례들 ‘안에서 나뉘어지지’ 않는다. 즉, 인성의 세 실례들은 세 인간을 말하지만, 신성의 세 실례는 세 신적 존재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 실례들(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각 위격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되, 어느정도 선에서는 마치 특정 존재가 바로 그 보편의 관계를 맺음의 방식과 같다.(Cross 1999, 61–71). 실제로, 신적 본성 혹은 신적 본질은 하나의 보편이며 동시에 한 실체이기도 하다(개별 실체, 실체적 존재, 실존 그 자체 등, Cross 2005, 181). 더욱이, 신적 본질이 한 실체일지라도, 동시에 그것은 “한 신적 위격이 다른 위격들을 산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힘이다.”(Cross 2005, 206).


각 위격들은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각 위격들은 공유하는 신적 본성을 갖고 있다. 각각은 서로서로, 마치 같은 재료 혹은 물질로 동시에 만들어진 두 개의 대상과 다소 유사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이것은 단순한 하나의 유비이다. 스코투스는 하나님 혹은 신적 위격이 부분적으로나마 물질로 이루어진다고 믿지 않는다). 말하자면, 각 위격들은 전체적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겹치며’(overlap), 동시에 각 위격은 부분적으로는 다른 위격에는 없는 고유한 위격적 속성을 지닌다. 스코투스의 용어를 빌지만, 각 위격은 신적 본질과 ‘본질적으로 같다’(essentially identical). 그러나 ‘형식적으로’(formally) 혹은 ‘위격적으로’(hypostatically) 같지 않다(not...identical).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베드로는 인성과 본질적으로 같다. 그러나 인성과 형식적으로는(formally) 같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누구에게는 없는 그만의 고유성(haecceity, 즉 그의 개별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실제로 구별되는’ 존재가 함축하는 바가 분리라면, 베드로와 바울은 ‘실제로는 구별되지만’,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그렇지 않다.(Cross 1999, 69). 그러므로, 크로스가 이 견해를 해석했듯이, 신적 본성 혹은 신적 본질은 위격들‘의 겹침’(the overlap of) 그이상이 아니며,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 ‘네 번째’ 신적 존재가 생겨나는 것을 방지한다.(Cross 2005, 166). 그럼에도, 신적 본질은 형이상학적으로, 세 관계가 갖고 있는 존재의 양태라는 점에서 위격들에 ‘선행’한다. 더나아가, 이러한 신적 본질은 즉각적으로 성부를 결정하며, 그 다음, 그를 통해서만이 성자와 성령이 결정된다. 이러한 과정은 원인적이지만, 스코투스가 주장하듯, 이것이 성부와 성령은 아버지에게 종속된다거나 성부보다 불완전하다거나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Cross 2005, 176–80, 245–8).


성자와 성령은 필연적으로가 아니라 의지적으로 출래하며, 성자는 성부에 의해 소유된 하나님의 기억에 의해 출생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령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요한 둔스 스코투스도 각 위격은 그들의 관계적 속성들로 구분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교회의 전통에 기초했기 때문이지, 그가 관계적 속성이 아닌 절대적 속성들로 각 위격이 구분된다는 주장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은 아니다. 아버지됨, 아들됨, 성령됨과 같은 관계적 속성들은 세 위격을 구성하지만, 그는 그것들이 그들의 유일한 속성이라는 점은 부정한다.(Cross 1999, 62–7). 이러한 속성들은 신적 본질이 아닌 위격들이 왜 교류적(communicable)이 아닌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제안된다.(Cross 2005, 163).


스코투스가 삼위일체 각각이 신적 본질에 대한 관계라고 생각하는 점은 가능한가? 크로스는 묻는다. “만약 신적 본질이 나뉠수 없다면, 어떻게 다른 세 위격에 의해서 실례화 될 수 있는가?”(Cross 1999, 68) 스코투스는, 신적 본질은 존재의 ‘나뉨’ 없이 반복 가능 혹은 교류 가능하다고 주장한다.(Cross 1999, 68). 그는 영-육의 비유를 든다. 순수 지성적 존재인 영은 각부분들의 구성 혹은 나뉨없이 각 신체기관에 동등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신적 본질도 세 위격들의 관계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신적 본질은 이런 방식으로 교류가능한 유일한 보편이라 주장한다.


스코투스는, 하나님 안에 오직 둘만 산출되어야 하고 산출되지 않은 한 존재(성부의 신적 본성이 아닌 바로 성부)가 있다는 결과를 낳는 논증을 위해 어떤 완벽한 존재를 가정한다. 더욱이, 주어진 본질(quiddity, 즉 실례화가능한 것 혹은 교류가능한 것)로서의 신적 본질은 어떤 실례화불가능한(ome non-exemplifiable thing ), 즉 여기서는 성부의 위격으로/혹은 그 안에서 존재한다. (Cross 2005, 127–52).


이 이론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왔다. 과거 혹은 현재의 어떤 기독교 사상가들은 그것을 이해한다고 주장했다. 종교개혁 시대 이후로 많은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추론에 염증을 느끼고 무의미한 가르침으로 축소시킨다. 그러나, 크로스는 그것의 동기와 일관성을 애써 설명한다. 


출처: http://plato.stanford.edu/entries/trinity/trinity-history.html#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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