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앙스 앙퓌즈] - 세상의 모든 리뷰 :: 삼위일체 교리 발전사(5) 스탠포드 철학 백과

posted by 사용자 자유로운 목사 2016. 9. 15. 21:43



본 포스팅은 스탠포드 철학백과의 "History of Trinitarian Doctrines"의 번역이다. 항목의 원저자는 뉴욕주립대(프레도니아) 철학 교수인 Dale Tugg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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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기독교 성경


2.1. 구약

2.2. 신약


3. 신경들의 발전


3.1. 325년까지

3.1.1 삼위일체와 유일신(The One God in the Trinity)

3.1.2. 테르툴리아누스


3.2. 325-381: 아리우스 논쟁


3.3. 니케아 합의 이전

3.3.1.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3.3.2. 아우구스티누스

3.3.3. 아타나시우스 신경


4. 중세의 삼위일체 이론들


4.1. 토마스 아퀴나스

4.2. 요한 둔스 스코투스


5. 중세 이후


5. 중세 이후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의 대격변이 시작된 이후, 많은 그리스도인이 신약을 재평가하고 사도적 교리와 양립할 수 없는, 혹은 사도적 교리의 기반이 부족하거나 때로는 이성과 상반되는 수많은 후대의 발전들을 거부하였다. 처음에 많은 종교개혁 지도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경시했고, 심지어 교황 권위나 화체설 교리처럼 버려야 할 것인지 아닌지 조차 확신하지 못했다.(Williams 2000, 459–60). 결국, 역사가들이 ‘관료후원적 종교개혁’(Magisterial Reformation)이라 부르는 이들은 결정적으로 신조적 정통(니케아 합의 이전이라 할 수 있는)의 편에 섰지만, 오늘날 ‘급진 종교개혁’으로 묘사되는 나머지 그룹은 그것을 경시하거나 무시하거나 때로는 부정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경 및 이성과 양립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성경 해석, 기독론, 신론 등에 관하여 신조적 삼위일체론자들과 ‘유니테리언’(이전에는 소키누스파라 불린)간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파우스투스 소키누스, 1539-1604 출처: 위키피디아)


역사가 보여주듯이, 부분적으로 비삼위일체론 그룹과 일부 반삼위일체론 그룹은 삼위일체론자들로 발전했다. 비록 유니테리언이나 삼위일체에 대한 대안적인 관점을 가진 이들이 반복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준/기독교 운동을 일으켰지만, 오늘날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 및 기독교 그룹들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아타나시우스 신경의 권위를 고수하고 있다. 동시에 신학자들은, 많은 기독교 그룹이 단언컨대 그들의 경건이나 설교에 있어서 비삼위일체론자(반삼위일체론까지는 아니더라도)에 준한다는 사실에 한탄한다.


최근의 신학에 있어서, 삼위일체는 숙고할만한 대중적인 주제가 되었고, 예배, 결혼, 성윤리(gender relations), 종교 체험, 정치 등과 관련한 삼위일체의 실천적인 사안이 반복적으로 논증되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 철학자들의 몫이 되었고, 또한 신학자들도 삼위일체의 비일관성과 난해함(unintelligibility)에 대하여 변호하고 적절하게 설명하기 위해 철학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지각하고 있다.


16세기부터 16세기까지 격렬하게 논의된, 삼위일체 교리의 신약적 근거의 취약성은 오늘날에는 논쟁적인 주제가 아니다. 아마도 일부 신학자들이 성경에서 그 교리를 이끌어오는 것은 아주 순진해빠진 시도라고 주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신학자들, 많은 기독교 철학자들과 변증가들은 비슷한 논증들을 취한다(본문 2.2.를 보라). 게다가 본문의 해석에 있어서 더 낫거나 못함이 없다고 보는 포스트모던의 시각은 학술적인 신학자들간의 관심사를 말소키니는 역할을 할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삼위일체는 그저 기독교의 주류의 전통 혹은 다양한 개별 기독교 전통이 강조하는 것일수도 있다. 즉, 많은 사람이 삼위일체를 고백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교회가 공식적으로 그러한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혹은 그 주류 전통이 성경이 삼위일체를 가리킨다고 말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역사적으로 반성직 및 비신조(anti-clerical and non-creedal)에서 탄생한 개신교인들 중에서도 공의회에 대한 불신 및 성경의 권위의 해체(post-biblical religious authorities)가 점점 사라졌다. 또한 에큐메니칼 운동, 반종파주의적 정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돌리려고 하는데,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주류 기독교 그룹이 동의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교리중 하나를 공격하는 것은 그릇된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출처: http://plato.stanford.edu/entries/trinity/trinity-history.html#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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